시7 주위사항 주위 사항 정 예 찬 이 시간엔 안오려 했어요 많이 먹은 시선 만큼 숨을 토해내요 눈길은 어서 주워가세요 가실 때 검은 봉투 주고 가세요 저도 남은 시선들은 집에 가져가게요 혼자 배고파지면 다시 천천히 먹을게요 감사해요 모른척 해주셔서요 2021. 3. 30. 강아지 둘 강아지둘 정 예 찬 된장집 강아지 두 마리가 엉덩이를 맞대고 부비고 있다. 내가 휙 지나가니 어린것들이 창피한건 아는지 멀찍이 떨어져서는 내가 가기만 없는 목 돌려가며 보고 있다. -쪼꼬만 것들이 벌써!- 2021. 3. 25. 호박 호박 정예찬 할머니 집을 마지막으로 간 날 그 많은 호박이 언제 할머니 집으로 전부 들어갔는지는 몰랐다 조금씩 들어온 호박들은 그 조그마한 집 구석구석에서 얼마나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는가를 말하고 있었다 나는 다른 것들을 가지겠다는 가족들의 이야기라는 것들이 오갈 때 그것들을 조용히 들었다 호박의 무게마다 집 비어있는 구석구석마다 목을 빼도 보지 못한 그리움을 가지며 하루를 보냈다 호박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면 쓸모없는 것들이라며 씨앗을 긁어낼 것이다 그리고 비어있어도 부드러운 속을 보여줄 것이다 2021. 3. 24. 팔찌 팔찌 정 예 찬 남미의 어느 길 전통 팔찌를 만든다는 늙은 집시 그가 앉은 나무의자와 같던 손 오른쪽 실은 가만히 왼쪽 실이 다가오면 오른쪽 실을 돌아보게 그게 가는 길로 돌아오는 그게 팔찌란다 이방인과 인연을 하나 엮어 자신의 살에 매듭을 새기고 끈이 되는 과정 어디를 가도 다시 돌아오는 그게 집시란다 엉킨 삶은 풀어지지도 끊어지지도 않아 난 오랜 시간을 인연을 꼬아보려 그를 기다렸어 바람이 들어 늙은 집시 제 자신의 끈에 마감질을 했어 전통팔찌를 만드는 집시 이제는 팔러갔는지 바람만났어 2021. 3. 23. 무지공책 무지공책 정 예 찬 내용도 모를 17페이지 정도를 뜯어내고 나면 해져버린 새로움이 있다. 재활용 자락의 도피로 날카로운 철사의 끝에 몸을 문대 숨구멍 같은 자유를 맛보기도 한다 광장의 공허함은 채워지지 못했다. 그 줄 없는 행렬에 팔꿈치만 저대로 간다 균등하고 정의롭지 못하게 공책 중간 몇 년 전 소년이 쓸데없는 말로 질문을 한다. 난 답변 없이 무심히 풀어낸다. 다음 새로운 재활용 장 뒷면은 숨도 못 쉰 채 노끈에 묶여 다른 삶으로 생을 이어가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질기게만 2021. 3. 23. 반지하 반지하 정 예 찬 낙엽이 모인 윗창문에 가로등 빛이 떨어지면 뒤집어진 하늘과 무중력을 느낀다. 뿌리를 못 내려 하늘에 누워 별들 사이에 온도를 잰다 -굳이 가까워지지 않아도 될 그 정도의 온도- 한 구석 페트병은 별빛을 깨트려 이 방이 얼마나 컸던가를 말하고 있다. 내게도 부서지면 팔지 못할 그들의 값을 헤아리며 내 몸에도 밤이 얼마를 차지했는가 따졌던 것들을 생각한다. 깜빡 죽어가는 가로등 점멸하는 별 2021. 3. 23. 이전 1 2 다음